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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일본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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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include>'''내각'''(內閣)[[일본]][[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내각법 제2조에 의거하여 [[내각총리대신]]과 14명 이내의 [[일본의 국무대신|국무대신]](특별히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17명 이내)으로 구성된다. 1885년 12월 22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내각관제’에 근거하여 초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조직한 것을 유래로 한다(다만 내각이라는 용어 자체는 1873년에 [[태정관]]에 설치된 태정대신과 참의로 구성되는 합의체를 가리켜 사용한 것이 최초). 4년 뒤 [[대일본제국헌법]][[행정]][[천황]]이 실시하고 [[일본의 국무대신|국무대신]]은 천황을 보필한다고 규정되었지만, 내각과 내각총리대신과 관련된 규정은 없었다. 내각은 당시의 법령인 ‘내각관제’로 규정되었지만, 내각총리대신은 같은 국무대신 중의 수석이라고만 할 따름인데다 직무조차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각의 각료에 대한 임면권은 천황이 가지고 있었고, 중요한 문제로 내각총리대신과 국무대신의 의견이 서로 대립할 때(각내불통일)에는 즉시 [[내각총사직]]으로 귀결되었다. 또한 내각총리대신은 천황이 내각을 조성하라고 명할 때가 있었지만, 그 실질적인 각료의 인선은 ‘원로’나 ‘중신’으로 불리는 총리대신 경험자 등의 추천을 통해 임명되었다. 그때문에 [[다이쇼 시대|다이쇼]] 말기부터 [[쇼와 시대|쇼와]] 초기의 정당 내각 시대까지도 어디까지나 총선거의 결과를 참조하여 원로가 추천하여 정당의 당수에게 천황의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또한 조각에서도 한때를 제외하고 육·해군 대신은 현역 대장이나 중장을 임명하는 규정이 사용되어, 군이 그 규정을 이용하여 조각에 개입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육·해군은 행정권의 대상이 아니라, 천황이 행사하는 통수권의 대상이기 때문에 내각이 군사정책에 관여하는 일도 사실상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국헌법|새 헌법]]이 제정되어 천황은 국가와 국민의 상징이 되면서 행정권이 분리되었고, 내각이 명실공히 행정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되었다. 또한 내각관제를 대체하여 내각법이 제정되었다. '''[[일본 내각|더 읽기...]]'''</only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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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include>[[파일:KTX-tail-Gwangmyeong.jpg|thumb|광명역을 출발하는 KTX-1 차량]]'''한국고속철도'''(韓國高速鐵道, Korea Train Express; '''KTX''')[[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고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고속철도]] 시스템의 명칭이다. 1970년대에 [[경부선]]의 여객 수요를 돌려 포화를 막기 위해 건설이 검토되어 2004년에 1단계 구간이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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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입찰에는 3개국에서 응하였다. [[일본]][[신칸센]], [[프랑스]][[TGV]], [[독일]][[인터시티 익스프레스|ICE]]가 입찰하였으나, 일본은 소극적인 기술이전과 좋지 않은 국민감정으로 인해 탈락, 프랑스와 독일이 경합을 벌이던 중 건설비 저리 융자를 약속한 프랑스가 차량을 납품하게 되었다. 속설에는 프랑스가 [[직지심체요절]]의 반납을 약속했다고도 하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이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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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고속철도의 건설에서 차량 선정, 정차역 건설, 역명 선정, 노선 선정 등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한 착공 이후 경주지역의 문화재 출토나 부산 천성산 터널 공사 논란, 잦은 설계 변경이 문제로 대두되고 여기에 외환 위기까지 겹쳐 공기가 예정된 6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시 대회 이전까지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의 1단계 구간을 개통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계속된 공기 연장으로 12년동안 사업을 진행하여 마침내 2004년 4월 1일에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을 개통하였다. 개통 초기에는 항공기보다 더 빨리 동남권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크게 인기를 모아, 김포 - 대구간 항공기 노선의 수요가 급감하여 마침내 [[대한항공]]이 철수하기까지 하였다. 이후에도 적극적인 KTX 중심의 [[다이어그램|다이아]] 개정을 통해 철도의 수송 분담률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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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과 [[호남고속철도]] 사업이 진행중이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이 종료되면 동대구에서 신경주, 신울산역을 경유하여 부산역까지 고속신선이 건설된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은 2010년 이후에 전구간 신선으로 개통된다. 신선 개통 이후에도 경부선 기존선 경유 열차는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마산·창원역이 추가 정차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한국고속철도|더 읽기...]]'''</only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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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6일 (화) 18:0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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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TX-tail-Gwangmyeong.jpg
광명역을 출발하는 KTX-1 차량
한국고속철도(韓國高速鐵道, Korea Train Express; KTX)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고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고속철도 시스템의 명칭이다. 1970년대에 경부선의 여객 수요를 돌려 포화를 막기 위해 건설이 검토되어 2004년에 1단계 구간이 개통되었다.

차량 입찰에는 3개국에서 응하였다. 일본신칸센, 프랑스TGV, 독일ICE가 입찰하였으나, 일본은 소극적인 기술이전과 좋지 않은 국민감정으로 인해 탈락, 프랑스와 독일이 경합을 벌이던 중 건설비 저리 융자를 약속한 프랑스가 차량을 납품하게 되었다. 속설에는 프랑스가 직지심체요절의 반납을 약속했다고도 하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이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첫 고속철도의 건설에서 차량 선정, 정차역 건설, 역명 선정, 노선 선정 등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한 착공 이후 경주지역의 문화재 출토나 부산 천성산 터널 공사 논란, 잦은 설계 변경이 문제로 대두되고 여기에 외환 위기까지 겹쳐 공기가 예정된 6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시 대회 이전까지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의 1단계 구간을 개통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계속된 공기 연장으로 12년동안 사업을 진행하여 마침내 2004년 4월 1일에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을 개통하였다. 개통 초기에는 항공기보다 더 빨리 동남권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크게 인기를 모아, 김포 - 대구간 항공기 노선의 수요가 급감하여 마침내 대한항공이 철수하기까지 하였다. 이후에도 적극적인 KTX 중심의 다이아 개정을 통해 철도의 수송 분담률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를 내었다.

2009년 현재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과 호남고속철도 사업이 진행중이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이 종료되면 동대구에서 신경주, 신울산역을 경유하여 부산역까지 고속신선이 건설된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은 2010년 이후에 전구간 신선으로 개통된다. 신선 개통 이후에도 경부선 기존선 경유 열차는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마산·창원역이 추가 정차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