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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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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감은사지
대한민국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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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사적 제31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제작 시기 통일신라
1963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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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感恩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통일신라 초기의 쌍탑식 절 배치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이다. 폐사되어 현재는 금당 유구와 행랑 유구, 석탑 2기만 남아있다.

감은사지는 신라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해 세운 절인 감은사의 터이다. 문무왕은 절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며, 절은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 대에 완공되었다. 문무왕의 유골이 대왕암에 뿌려진 후,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로 지었다. 중문, 강당, 금당이 같은 축 상에 배치되고 건물이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음이 발굴조사에서 밝혀졌다. 금당 앞에는 하나의 목탑 대신 석탑이 쌍을 이루어 세워졌는데, 이는 신라의 통일 후 가람배치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발굴된 금당터 밑에는 물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공간을 통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건물은 중심축 위에 순서대로 중문, 금당, 강당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강당 앞마당에 서로 대칭되는 두 탑을 세웠다.

감은사지석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탑의 모양과 형태는 모전석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통일신라 특유의 삼층 석탑의 앞선 양식을 잘 보여준다. 탑터에서는 기와나 벽돌들이 출토되었는데, 통일신라 초기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와막새무늬들은 감은사가 존재했던 시기를 추측케 한다. 동서 각 석탑의 탑신부에서는 화려한 금동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중문 좌우로는 강당 좌우까지 이어지는 회랑이 있으며, 이로 절의 구역을 형성하였다. 또한 금당 좌우로 중간회랑이 뻗어 구역을 앞뒤로 나누었다. 동서회랑의 길이는 약 75.9미터이고, 남북회랑은 약 68.8미터로 현재까지 사찰 건축에서 처음으로 동서의 폭이 큰 경우이다.

금당터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강당터는 동서 약 29미터, 남북 약 10.6미터이며 중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탑터에서는 기와와 벽돌류, 그밖에 약간의 질그릇들이 출토되었는데 통일신라 초기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와막새무늬들은 이 절의 존속기간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

  • 문화재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편저 저, 『한국문화재대백과사전』, 여강출판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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