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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include>'''제국대학'''(帝國大學, {{lang|ja|帝国大学|데이코쿠다이가쿠}})은 1886년에 공포된 [[일본]]의 제국대학령에 의하여 설립된 대학을 말한다. 도쿄제국대학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에는 명칭이 제국대학이었으므로 1개 대학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지만, 이후 도쿄제국대학으로의 개칭과 여러 제국대학의 설립으로 인하여 제국대학 군의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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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include>'''경성 경마장''' (혹은 신설동 경마장)은 1928년 현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었던 경마장이다.
  
* 1886년부터 1897년까지 일본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도쿄대학(1877년 설립)이 제국대학령에 따라 제국대학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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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경마대회가 처음으로 열린것은 1914년 용산 연병장이었다. 그 이후 을지로 6가의 훈련원 광장(현 동대문운동장), 동부이촌동의 한강백사장 등으로 옮겨가며 개최되건 것이 경성 경마장이 개장되면서부터 한곳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명 신설리 85번지 소재의 5만여평의 땅, 현 숭인동 동묘 동쪽에서부터 신설동 남쪽 청계천로에 이르는 지역에 건설되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경주마가 징발당하고, 기수들이 징병, 징용되면서 경마 개최가 1944년 중단되게 된다.
* 1897년부터는 제국대학령에 따라 설치된 여러 대학의 총칭. 제국대학이 폐지된 47년까지 일본 본토에 7개교, 식민지에 2개교가 설치되었다.
 
  
제국대학은 여러 지역에 설치되어 각 지역의 종합대학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다이쇼 시대]]에는 졸업식에서 학과에서 최우수 성적을 받은 자는 [[천황]]으로부터 은사의 은시계를 하사받기도 했다. 1886년에는 동창회인 학사회(学士会)가 결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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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마사회는 해방후 한국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미군정도 경마에 관심이있어 다시 몇년간 지난 상황을 되찾게 되었다. 해방 후 신설동 경마장에서는 백범 김구, 이승만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 조병옥 박사 등 국내 요인들이 모여 경마를 즐겼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에도 일요일 경마가 진행중이었다고 한다...'''[[경성 경마장|더 읽기...]]'''</onlyinclude>
 
 
제국대학은 [[대일본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이른바 '''제대'''로 불리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패망 이후에 폐지되었지만 제대 출신은 이후에도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등에도 영향력을 가졌다. 특히 제국대학 폐지 이후에도 각 대학들은 지역에서 주도권을 갖는 대학으로 성장해 왔다. '''[[제국대학|더 읽기...]]'''</onlyinclude>
 
  
 
<noinclude>[[분류:들머리 틀]]</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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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9일 (수) 20: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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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경마장 (혹은 신설동 경마장)은 1928년 현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었던 경마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경마대회가 처음으로 열린것은 1914년 용산 연병장이었다. 그 이후 을지로 6가의 훈련원 광장(현 동대문운동장), 동부이촌동의 한강백사장 등으로 옮겨가며 개최되건 것이 경성 경마장이 개장되면서부터 한곳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명 신설리 85번지 소재의 5만여평의 땅, 현 숭인동 동묘 동쪽에서부터 신설동 남쪽 청계천로에 이르는 지역에 건설되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경주마가 징발당하고, 기수들이 징병, 징용되면서 경마 개최가 1944년 중단되게 된다.

당시 조선마사회는 해방후 한국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미군정도 경마에 관심이있어 다시 몇년간 지난 상황을 되찾게 되었다. 해방 후 신설동 경마장에서는 백범 김구, 이승만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 조병옥 박사 등 국내 요인들이 모여 경마를 즐겼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에도 일요일 경마가 진행중이었다고 한다...더 읽기...